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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사랑하라'는 설교만 일 년을 했을 때 일어나는 변화

아주 옛적에 들은 예화이다.

어느 시골 교회에 한 노인 목사님이 부임하셨다.

목사님은 부임한 날 사랑에 관한 설교를 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보내서 죄를 담당하셨다. 그리고 그 사랑을 믿는 사람들에게 넣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사랑을 가졌다. 그러니 사랑하라." 이런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이 설교를 좋아했다.

다음 주에 무슨 설교를 할까 사람들은 기다렸다. 목사님은 또 "사랑하라"는 같은 설교를 했다. 사람들은 조금 짜증이 났다. "다음 주에는 다른걸 하시겠지." 다음 주가 되었다. 또 사랑하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들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 또 그런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년이 계속 되었다.

 

사람들은 화가 났다. 같은 소리만 하니 이렇게 우롱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목사님에게 다른 곳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목사는 아무 말도 없이 짐을 쌌다.

그래서 고별 예배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솔직히 목사가 그렇게 금새 떠날줄 몰랐다.

약간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 마지막 설교를 경청해 주었다.

목사는 강대에 올라갔다. 무엇이 마지막 설교일까?

그 내용은 "사랑하라"였다.

사람들은 묵묵히 들었다. 저 노인이 왜 저래야 하는가?

이상한 일이었다. 눈물이 자꾸 나는 것이다. 오죽하면 가는 날까지 저러랴. 얼마나 우리가 사랑을 안하면 저러랴. 이러다보니 교회당이 울음 바다가 되었다. 예배가 끝나자 사람들을 달려들었다.

 

"목사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데 않했습니다. 제말 용서하시고 가지 마십시오. 계속 사랑하라는 설교만 해주십시오. 그것만 듣겠습니다."

 

그리하여 목사는 남게 되었다.

다음 주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랑하라는 설교를 들으러 모였다.

설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십일조 하라"는 주제였다.

사랑하라는 설교는 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깨달았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있다고 믿으면 드리라는 한 것이다. 바로 다음 주일 전교인이 십일조를 드렸다.

만약 안하면 일년 내내 십일조하라는 설교만 나올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주에는 어떤 설교가 나왔을까? 교회봉사하라는 설교가 주어졌다.

그러자 모두들 봉사를 자원했다. 주일학교, 성가대에서 시작해서 청소하는데까지 모두가 나섰다.

 

이렇게 해서 이 교회는 말씀대로 행동하는 교회가 되었다.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말씀대로 삶의 질서가 잡히고 성장되었다.

신자들은 이제 성경말씀대로 행동하는 훈련을 하였다.

병든자가 있으면 장로들을 모셔다가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였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고 병자를 고쳤다.

쑥쓰러워도 전도했고 병자를 보면 서로 손얹고 기도했다.

이러다가 망신 당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주의 명령에 순종했다. 주는 말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말을 지킬 것이다."

 

성령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자와 함께 하신다.

성령을 경험하고 싶으면 말씀대로 행동하라.

그것이 온전한 믿음이다. 행동하기 이전에는 그냥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행동한 다음에는 성령의 사람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