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쓰레기집에 살고 있는 아픈 사람들 _저장강박증

예화지기 2020. 7. 4. 17:14

쓰레기집엔 '아픈 이들'이 산다

 

이날 찾은 원룸은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던 곳이라곤 믿기 어려웠다. 초파리들을 헤치고 집 안에 들어서자 무릎까지 차오른 배달 용기와 옷가지, 페트병 사이로 고양이 변이 눌어붙어 밟을 때마다 찌걱거렸다. 천장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음식 봉투마다 부화 못 한 하루살이 알이 들깨처럼 박혀 있었다. 화장실과 부엌 벽을 따라 핀 곰팡이 탓에 원래 색깔을 알기도 어려웠다. 팀원들은 이런 집을 매주 2~3곳씩 치운다고 했다.

 

"쓰레기집에서 나오는 쓰레기양은 상상 이상입니다. 지자체가 수거를 꺼려 55만원을 주고 1t짜리 폐기물 트럭을 부르는데, 그마저도 자리가 모자라 두 번씩 왔다 갔다 해요. 8평 원룸에서 쓰레기가 3t 넘게 나온 적도 있어요."

 

이 대표가 덧붙였다.

쓰레기집 청소는 돈을 평수로 계산해 받지 않는다. 같은 면적이라도 쓰레기의 양에 따라 난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원룸은 쓰레기가 무릎까지 차면 80만원 선, 허리까지 차면 100만원을 받는다. 직원 네 명이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방이 3개 이상인 집은 부르는 게 값이다. 열 명이 열두 시간 동안 청소하기도 한다.

 

 

이런 집에도 사람이 산다. 이 대표는 대개 '아픈 이들'이라고 했다.

 

"쓰레기집에 사는 분들 대부분이 마음의 병을 앓고 계세요. 살아갈 의욕을 잃어 쓰레기가 이렇게 쌓일 때까지 치우지 않는 거죠. 고객 중 80% 정도가 여성인데, 성폭력 등 범죄 피해자나 경제 능력을 상실한 분이 대부분입니다. 한 여성 고객은 성폭행을 당하고 아이를 유산했어요. 그때부터 심한 우울증이 닥쳐 집이 난장판이 됐대요. 이런 분들은 청소 의뢰가 끝나도 '잘 살고 계시나' 걱정이 됩니다."

 

공간을 정리하다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쓰레기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게 약봉지예요. 그만큼 아픈 분이 많다는 증거죠. 고양이 똥이나 사료가 나오면 '동물에게 위로를 받았구나' 싶고요. 매일 고객의 과거를 마주하면서 청소하는 셈입니다."

 

"1년 반 쓰레기 비우고 마음도 치유돼"

 

서울에 사는 A(30)씨도 얼마 전까지 쓰레기에 포위돼 잠을 잤다. A씨 집에 쓰레기가 쌓인 건 우울증이 심해진 2018년부터. 증세가 심해진 후로는 받고 있던 정신과 치료도 중단했다.

 

"온종일 먹지도, 씻지도 않고 누워 있었어요.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으면 나도 쓰레기가 된 기분이 들어요.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죠."

 

A씨는 1년 반 넘게 쌓인 쓰레기를 올해 초 클린 어벤져스 도움을 받아 치웠다.

 

"깨끗한 집을 보니 과거로 돌아가기 싫어서 매일 청소를 하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 병원도 다시 다니고요. 원래 대인 기피증이 심했는데, 이제는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기까지 해요. 내가 사는 집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어요."

 

전덕인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이사장(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자신도 모르게 쓰레기를 계속 쌓아두는 경우 치료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저장 강박증은 대개 무기력증을 동반하는데, 약물만으로는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중증 우울증이 쓰레기의 원인인 경우도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하고요."

 

전쟁 같던 이날 청소는 4시간 만에 끝이 났다. 운전기사가 1t 트럭에 넘치도록 나온 쓰레기를 꽉꽉 눌러 담았다. 쓰레기를 비워낸 집은 방역과 소독, 도배 작업을 거칠 예정이라고 했다.

클린어벤저스 이준희 대표에게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물었다.

 

"사람요. 우울증 환자를 주로 만나다 보니 청소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청소가 끝나고 나서도 고객들이 종종 연락해요. '대표님, 저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라면서요. 그분들을 봐서라도 힘을 내야죠."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704030143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