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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노벨상 정자은행에서 태어난 천재 아이들의 삶

천재공장 - 데이비드 플로츠지음

 


전설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이 영국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에게 아기를 낳자고 제안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저의 미모와 선생님의 두뇌를 합하면 얼마나 멋진 아기가 태어날까요?" 그러자 쇼는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라도 나의 육체와 당신의 머리를 닮은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합니까?"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단점이 보완된 훌륭한 아기를 낳기 위해 배우자를 골랐다면, 이처럼 절반은 성공할 것이고 절반은 실패한다.

 

그렇다면 천재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기를 낳으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1980년 미국에서 이른바 '후손 선택을 위한 저장고'가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문을 열었다. 노벨상 수상자의 정자만을 기증받아 지능지수(IQ) 160 이상의 여성회원들에게만 정자를 제공하는 정자은행이 출범한 것이다. 1999년 이 은행이 문을 닫을 때까지 19년 동안 이 은행을 통해 시험관 아기 등으로 217명의 '천재아이'가 태어났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데이비드 플로츠는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에 호기심을 꽂았다. "그들은 정말 천재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4년여의 끈질긴 추적 끝에 그는 노벨상 정자은행의 진실을 밝혔다.

 

이 책은 저자 데이비드 플로츠가 이십 년이 지나 노벨상 정자은행 출신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신문 <슬레이트>에 13회에 걸쳐 ‘정자’라는 제목으로 쓴 연재 기사를 엮은 것이다. 정자은행에서 제공받은 정자로 태어난 30명의 아이들을 취재한 저자는 아이들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았음을 독자들에게 알려 준다. 제 아무리 과학의 힘을 빌려 유전자적으로 똑똑한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들의 삶의 질까지 보장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인간개조 프로젝트는 실패였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설사 아이들이 머리 좋게 태어났다 한들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았다.

 

이 책은 과학을 다룬 책이지만 소설적 구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천재 한 명의 정자로부터 태어난 두 명의 이복(異腹)형제 이야기가 줄거리의 뼈대를 이룬다. 성향이 다른 어머니 밑에서 교육 환경이 현격히 차이 나는 가정에서 자란 톰과 앨턴의 사례를 통해 저자는 선천적 환경과 후천적 환경을 비교하고 싶어했다.

 

의학에서 질병 발생의 후천적 요인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흔히 ‘쌍둥이 비교 연구’가 쓰인다. 예를 들어 쌍둥이가 서로 떨어져 살았을 경우, 그들의 유전자 조건이 동일하다고 보고 성장환경 또는 생활습관 차이가 어떻게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유전자에 의해 영향받는 요인은 대략 30%이다. 나머지는 후천적인 요인으로 결정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도 이 부분이다. 가족과 주변의 관심과 애정으로 아이들의 성장과 삶의 질은 결정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족이라는 게 과연 유전자나 혈연의 문제인지 하는 의문도 품게 만든다.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0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