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감사예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예화지기 2020. 12. 29. 21:10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지난 주말 인천에 볼일이 있어서 전철을 이용하게 되었다. 저녁시간이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인지라 더위를 먹지나 않을 까 미리부터 잔뜩 겁을 집어먹고 역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인 탓에 역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특히 전동차 안은 더위 먹은 사람들의 열기로 유난히도 후덥지근했다. 더욱이 내가 타고 있는 칸은 갈아타는 사람들도 한결 많은 듯했다. 갈수록 차안은 복잡해져서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몸의 중심조차 제대로 가누기 어려워져서 꼼짝없이 밀면 밀리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몸을 내 맡길 수밖에 없었다.

 

옷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으로 축축해졌고, 얼굴과 목으로 흐르는 땀방울은 닦을 수도 없었다. 누구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지만 오늘 같은 날 땀 범벅이 된 옷을 스치는 일이야말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퇴근 길 극도로 지친 몸들이 그래도 기대하는 것은 승객들이 줄어들면 제대로 몸의 중심을 잡은 채 서 가고, 다행이 좌석이 비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자 하는 희망일 뿐.... 타고 내리는 일이 계속되면서 전철 안이 헐렁해져 나는 어느 정도 몸을 가누고 한숨을 돌리며 좌석 앞에 서게 되었다. 이때 내 바로 앞의 승객이 주섬주섬 내릴 차비를 하는 게 아닌가. '이제야말로 몸을 기대고 앉아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가겠구나.' 하고 기대했지만 그 승객이 일어서기가 무섭게 그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잽싸게 그 자리로 옮겨와 앉으며, 자신의 '동행'을 앉히는 게 아닌가. 이런 몰상식한 행동이 어디에 있겠는가. 피곤하기는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내심 불쾌한 감정이 일었다.

이때 새로이 앉게 된 승객이 옆의 동행을 나무라며 말했다.

"제가 앉을 자리가 아닙니다. 앉으시지요."

오십 남짓 돼 보이는 그 승객은 자기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로 몸집이 비대하여 보기에도 다소 안쓰러웠다.

"아닙니다. 앉아 가시지요." 하며 서 있었지만 불쾌한 감정이 쉬 가시지는 않았다.

몇 정거장을 더 가다가 그 승객은 미안한 듯이 다시 일어나 내게 자리를 권했다.

"이제 잠시 쉬었습니다. 앉으시지요."

"아닙니다. 곧 내립니다." 하며 미안해하는 그 승객을 피하여 맞은편 좌석을 향하여 서서 가다가 다행이 그 쪽 자리 하나를 발견하고는 털썩하고 앉아 잠깐 눈을 감았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즈음, 내 앞으로 서있는 승객들을 비집고 누군가 다가오더니 ,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며 정중히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걸어나가는 아까의 그 넉넉한(?) 여인, 나는 일순간에 모든 더위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