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조선말에 독립협회 사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용단체인 황국협회가 독립협회를 탄압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이 때문에 17명의 독립협회 간부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때 이들을 체포한 사람이 당시 현재의 경찰총장에 해당하는 경무사 김정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국민들의 분노를 싸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 같은 사태에 직면하자
정부는 이 모든 책임을 경무사 김정근에게 덮어씌워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리던 김정근은 감옥에서 하루하루를 분노를 곱씹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쩌다 성경을 읽게 되고, 선교사의 방문을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 매일매일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데,
성경에서 죄인이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인가?'
그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이름이 앵사인데, 그 딸을 자신이 돌볼 수가 없어 아이를 버렸던 사실이 생각이 납니다.
자신이 참 몹쓸 짓을 했구나, 그러면서 자신이 지은 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억이 나는데, 정말 죽겠더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어렸을 때 버려진 앵사가 너무나 불쌍한지
독방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괴성을 지르고, 벽을 치고, 나중에는 돌돌 구르며 가슴을 찢었습니다.
더 이상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발버둥을 치다 혼절을 했는데,
눈을 떠보니 자신이 예수님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고,
예수님이 자신을 바라보며 아주 측은한 눈으로
“그래 그래 내가 다 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가득 자리를 잡았던 분노와 복수의 칼날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더라는 것이죠.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서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이제는 도리어 그들이 불쌍해지고 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할텐데 걱정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경무사 김정근은
1895년 지방관제 개혁 때 강계부관찰사(江界府觀察使)를 지냈다. 독립협회의 의회 설립에 대한 고종의 재가에 당황한 수구파의 책동으로, 1898년 11월 경무사(警務使)로 임명되어 고종의 명에 따라 이상재(李商在)·방한덕(方漢德)·남궁억(南宮檍)·정교(鄭喬) 등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체포하였다.
또한 독립협회 사무실을 수색하는 등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섰다. 그러나 체포된 간부의 석방을 요구하는 독립협회 회원들의 시위가 경무청 앞에서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같은 달 7일에 파면되었다.
이후 독립협회로부터 독립협회 탄압 5흉(五凶)의 한 사람으로 규탄되었고, 독립협회의 요구에 따라 정부에 의해 같은 달 17일에 체포되었으나, 독립협회 해산과 더불어 1899년 1월 풀려났다.
이어서 1900년 강원도관찰사, 1901년 법부협판(法部協辦), 1904년 경위원총관(警衛院總管)·경무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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