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에는 은명내과의원이 있다. 1984년에 설립된 이 병원은 정동교회 김경희 장로님이 원장으로 진료를 베풀고 있다. 그는 환자를 돌볼 뿐만 아니라 85년도에 은명장학회를 조직해 불우한 청소년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85년설립 이후 89년까지 자그마치 800명의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에게 학비를 보조해 주었다.
중학생에게는 연간 28만원씩, 고등학생에게는 40만원씩 지급했다.
김 장로님은 은명심장수술후원회를 조직, 수술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심장질환자들을 돕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이분이야말로 병든 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이다.
은명내과의원을 위해 김 장로님은 다음과 같은 소원을 잊지 않고 외우고 있다 한다.
"은명의원, 사랑의 집
너는 소금과 빛이 되고
방주와 등대 되어라
육신의 고통을 덜어 주고
죽을 생명 살려 주며
마음의 평안까지 선물로 주려무나.
강도 만난 자의 상처를 치료하고
물에 빠진 자에게 생명줄 던져 주고
약한 자의 무거운 짐 내려 주어라."
다른 사람의 슬픔과 아픔을 나누어 지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가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릴 것이다.
◆ 김경의 장로 약 력 ◆
·세브란스의전 졸업(1943)
·김경희 내과 의원 개설(1947)
·일본경도대학의학부 의학박사학위 취득(1957)
·은명장학회 창설(1985)
·은명심장수술후원회 설립(1986)
·정동교회 중계동무료진료소소장(1990)
·상계동 은명내과 개설(1984∼현재)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을 바친 ‘상계동 슈바이처’가 기력을 잃고 60여년 동안 들었던 인술(仁術)의 청진기를 내려놓았다. 그가 운영하던 은명내과의원은 고행 길을 뒤따르겠다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24일 폐업 신고서를 내고 문을 닫았다. 병원 입구엔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휴진하오니 양해 바랍니다’란 안내문이 걸렸다. 개원 20년 만의 폐업이다.
3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됐지만 내색을 안 하고 얼마 전까지 독거노인 무료 진료를 다니던 김 원장이었다. 15년 동안 봉사활동을 함께 한 현대교회 진삼웅(50) 목사는 “목과 허리 디스크를 앓으셨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며 왕진을 계속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평소 “팔 다리야 아픔을 껴안고 살지만 혈관이 안 좋으면 내일을 기약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심장병 악화로 마침내 기약 못할 그날을 맞은 것이다.
68년 전인 1936년 1월 어느날 서울 정동교회. 한말(韓末) 궁의(宮醫·한의사)의 손자 김경희(당시 배재고보 3학년·16세)는 “하나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나이다” 하고 기도로 약속했다. 식민 치하에서 가난 때문에 치료 한 번 못받고 결핵에 걸려 숨진 친구들, 스스로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중생(重生) 체험’이 그를 바꾼 것이다. 4년 후 세브란스의전(醫專·연세대 의대 전신)에 진학한 그는 평생 이날의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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