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성악가 김영미 씨가 CBS의 <새롭게 하소서> 간증을 모은 책에서 간증하였다.
그녀는 외할아버지도 성악가셨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그런 피를 이어 받았다.
어릴 때부터 성악이 뛰어났다. 고등학교만 마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베로나 콩쿠르, 푸치니 콩쿠르에서 일등을 했다.
“섬세한 테크닉과 화려한 목소리의 주인공”
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유력한 1등 후보였으나 우승 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그때에야 이탈리아 음악계의 텃세를 절감하게 되었다. 상한 마음으로 무대를 미국으로 옮겼다.
그러나 미국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았다. 오래 도록 공연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다.
두려움과 허탈감과 우울증이 엄습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서야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동안 교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였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 왔다.
하나님은 그녀를 미국 오페라 계의 ‘프리마돈나’(prima donna)로 들어 쓰시기 시작했다.
오페라 주역 남성 성악가를 ‘프리모우오모’(primo uomo)라고 하고 “프리마돈나란 오페라의 주역을 맡는 여성 성악가”를 말한다. 주의 은혜를 체험한 그녀의 나중 고백은 이렇다.
“노래할 수 있는 재능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노래를 부르는 목적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내 평생 자랑하고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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