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집'

예화지기 2025. 7. 31. 21:06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존재 됨을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갖 빈말과 거짓말, 가짜뉴스와 폭력적인 말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존재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요사이 우리 사회의 언론과 한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오히려 더 빈말, 헛말,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폭력적인 빈말과 헛말이 횡행하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행복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말을 위한 싸움은 장기전이라서 날마다, 시간마다,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혀를 제어하는 것이 성숙의 표시라면,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 누구나 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은 야곱처럼 다리뿐 아니라 말도 절뚝거린다. 마음을 정복하면 혀가 침묵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말을 할 때 먼저 침묵한 자로서 말한다.

혀는 우리 중심의 경건치 못한 욕망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눈금이다.

혀의 성화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일으키는 역사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들을 때 우리에게 오고,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 거한다고 했다.

 

이어 혀를 더 잘 다스리고 싶은가?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그분이 구주이심을 이해해야 한다. 자기 입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한마디도 중립적이지 않다. 생명으로 향하는 말과 죽음으로 향하는 말이 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구속의 사랑은 숨겨진 조용한 순간, 어느 날 화장실에서 맞이한 사소한 순간에까지 파고든다.

실제로 구속의 사랑은 이처럼 질투심이 강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단순히 정보 제공 차원에서 주신 게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다. 말의 문제는 어휘의 문제도, 기교의 문제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마음의 문제다.

죄는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하게 한다. 삶을 고작 내 삶의 크기로 오그라뜨린다. 나의 바람, 나의 필요, 나의 감정에 집착하게 한다.

사랑의 삶을 살려면 먼저 자신에게서 구조되어야 한다. 우리를 구조하는 그분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요한이 묘사한 대로 타인을 사랑할 능력이 전혀 없다. 내 마음의 생각과 내 입술의 말 사이에 유기적 일관성이 있다.

말의 전쟁은 자신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간의 전쟁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나라가 말도 다스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