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얼굴 표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이유

예화지기 2019. 3. 25. 23:08

용모는 하나님이 책임지는 것이고, 표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용모는 하나님의 창조에 속하기 때문에 ‘잘 생겼다, 못 생겼다’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고,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다.

 

 

그러나 표정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표정은 내 생활과 마음의 산물(産物)로서 내가 어떤 생활을 하느냐,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밝을 수도 어두울 수도, 사랑스러울 수도 사나울 수도, 표독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 갖고 신경 써야 할 것은 얼굴이 아니라 표정이다.

 

사람의 얼굴 근육의 개수 80개, 이중 웃을 때 사용하는 얼굴 근육의 개수 50개. 그리고 근육으로 만들 수 있는 표정의 개수는 약 7천여 개라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인간의 표정이 -기쁘다, 슬프다, 화난다 등 ―과 같이 간단한 몇 종류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가짓수가 이렇게나 다양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7천여 가지의 표정이라니, 우리는 살면서 이 표정들을 다 지을 수 있을까? 아니, 표정이라는 게 상황과 느낌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면 사실 더욱 더 많은 표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표정이란?

 

갑자기 생뚱맞은 얘기일지 모르겠다만 사실 표정이라 하면 단지 얼굴에 나타나는 것을 떠오르겠지만 사실 사전적 의미는 다소 광범위하다.

 

표정[表情] :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 또는 그런 모습. (출처 : DAUM 사전)

 

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가 모두 표정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얼굴에 나타난 표정에 대한 정확한 사용은 ‘표정’이 아닌 ‘얼굴 표정’일 것이다.

 

표정이 다양해야 하는 이유?

 

예전에 알았던 필자의 친구 아버님은 미대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셨다.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갔던 필자는 친구의 아버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명 ‘표정의 미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그 내용인 즉,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표정이 다양하다는 간단한 주장이다. 참으로 미대교수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의 주장은 (그 진지했던 표정만큼이나)설득력이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졌는지 필자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표정이 다양하지 않은 사람은 생각이 없거나 단순하다는 다소 차별적인 발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쨌든 뭐 그렇다는 거다.

 

너는 숨길 수 없다

 

얼굴표정 연구의 대가인 폴 에크먼(Paul Ekman) 박사의 주장은 흥미롭다. 아무리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도,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결국 표정을 숨길 수는 없다는 거다. 단지, 빠르게 표정을 바꾸는 것일 뿐. 15분의 1초 이하로 지속되는 이 미세표정으로 거짓말을 잡아내는 대표적인 얼굴표정은 두 가지라고 그는 주장한다. 첫 번째는 좌우 대칭이 어긋나거나, 두 번째는 얼굴 표정의 변화가 바뀌는 게 부자연스럽거나. 이 두 가지 방법은 통해서 거짓말을 잡아낼 수 있다고 한다. 15분의 1초의 순간을 잡아낼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굳이 이 방법을 통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나이 수에 맞게 사회에서 살아 온 우리는 상대방 얼굴을 보며 거짓말임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생각한다.

 

어찌됐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

 

링컨은 “사람 나이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고 했다. 어찌 보면 이도 맞는 게, 표정은 단순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아니라 내면의 표출이다. 미간을 찌푸리면 미간에 주름이 생기 듯, 얼굴표정 하나하나가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 성형을 생각할게 아니라 웃는 표정을 연습하는 게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한다. 하회탈이 정겨운 이유, 이도 결국 우리는 가장 좋은 표정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