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라고 하는 분은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총장을 지내셨고 오늘 살아 있는 윤리학의 최고의 거성입니다. 그가 시골에서 태어나서 함부르크에 올라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함부르크에 올라 왔을 때에는 세계 1차대전이 막 끝이 났을 때였기 때문에, 독일이 어려웠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은 고사하고 호구지책도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찾아 나섰지만 그렇게 쉽게 찾아 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조간신문에 보니까 함부르크 동물원에서 사람을 찾는 구인광고가 났어요. 다른 사람들이 갈세라 동물원 문도 열기 전에 원장님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사람을 구한다고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저를 써주세요." 이렇게 부탁을 했더니 원장이 틸리케를 썩 보더니 "당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겠느냐?" 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원장이 하는 말이 "당신도 알다시피 전쟁을 하는 동안에 독일 국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다 잡아 먹어 버리고 이제 가죽밖에 남지 않았는데 전쟁이 끝나서 이제 다시 동물원을 시작해야 할텐데, 한꺼번에 그 많은 동물을 구할 수도 없고, 예산도 없어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실업자들이 많으니까 실업자들이 고용해 가지고 그 동물 가죽을 사람이 뒤집어 쓰고 우리 안에 들어 가서 동물 노릇을 하는 것으로 이렇게 결정했다고, 그래서 당신은 곰처럼 생겼으니까 곰노릇을 하라."고 그렇게 얘기했어요. 틸리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굶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곰가죽을 뒤집어 쓰고 곰우리에 가서 곰노릇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원장님이 부르시더니 "오늘은 함부르크에 있는 국민학교 아이들이 동물원을 관람 오는데 당신이 사람이라는 것이 발각되지 않도록 잘 좀 해 달라."고, 그래서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고 가서 기다렸더니 조금 있으니까 어린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왔습니다. 선생님이 "이 놈은 곰이라는 놈으로 머리가 둔하여 돌대가리 같은 녀석인데 고집이 세지만 그래도 춤은 잘 춘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틸리케가 춤을 잘 춘다는 이야기를 듣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박수를 치고 재미가 나서 깔깔깔 웃고 아주 신이 났어요. 그쯤 해두고 끝났으며 괜찮았을텐데 신이 난 틸리케는 나무가 한 그루 옆에 있었는데 나무 위에 올라 가서 춤을 추다가 그만 헛발을 디뎌 아래도 뚝 떨어졌습니다. 떨어졌는데 자기 우리로 떨어졌으면 괜찮았을텐데 그 옆에 있는 호랑이 우리로 뚝 떨어졌어요. 틸리케가 떨어져서 가만히 호랑이 눈치를 보니까 호랑이가 저쪽에 누워 있는데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배가 푹 꺼진 굶주린 호랑이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거예요. 아이쿠 이제는 죽은 모양이구나. 이제 벌벌 떨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이 호랑이가 어슬렁 어슬렁 그에게 가까이 다가 오더니 뒷발로 자기를 한번 툭 건드렸습니다. 그래서 아이쿠 이제는 죽었는가 보다 벌벌 떨고 있는데 가까이 와서 귀에 대고 하는 말이 "야! 임마, 걱정하지마. 나도 사람이야."
우리는 이 틸리케의 이야기 가운데서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물은 배고플 때 다른 동물을 잔인하게 잡아 먹을 수 있지만 인간은 인간이게 때문에 다른 인간을 잡아 먹을 수 없다는 그런 윤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서 얼마나 많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먹어버리고, 중소기업은 소기업을 먹어 버리고, 소기업은 구멍가게나 포장마차를 못 살게 만들어 버리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잘못된 자본주의는 이 사회에서 빨리 없어져 버려야 됩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쳐 주고 일감을 주고 자본을 대주고, 중소기업은 소기업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서로 도와 주고 협력하고 협동하는 그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겠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생애를 통해서 이렇게 이름 없이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빵만으로 인간이 사는 것이 아니고 빵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이 참된 삶이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의 장벽을 넘어서 인류가 동경하는 영원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꾸준히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물질 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물질의 장벽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주신 그 삶의 희생에 빵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인류에게 비추어 주신 그 서광을 우리 마음속에 받으면서 오늘 한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이 국가와 이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살아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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