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예화]윌리엄 쿠퍼 '지혜는 더이상 아는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겸손이다'

예화지기 2025. 8. 25. 21:24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 "샘물과 같은 보혈(Cleansing Fountain)"

이 찬송을 작사한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 1731-1800)69년 생애 동안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윌리엄이 여섯 살이었을 때 그의 어머니 앤은 출산 중 사망을 했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은 윌리엄에게 슬픈 영향을 미쳤고, 그는 평생 동안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 질환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교육을 받은 후, 1754년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상원에서 저널의 서기직을 제안 받아 준비하는 가운데 그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다가 결국 공황장애 (Panic Disorder)를 앓게 되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 그는 세 번이나 생을 마감하려고 자살을 시도까지 했습니다. 결국 그는 성 알반(St. Alban)의 요양원으로 보내져 기독교 치료사인 코튼 박사(Dr. Cotton)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습니다. 18개월 동안 머무는 동안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몸과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 했습니다. 당시 그는 롬 3: 23-25을 통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원을 받는 다는 사실에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양원에서 나온 후 그는 몰리 언윈(Morley Unwin) 이라는 은퇴한 목사와 그의 아내 메리(Merry Unwin)와 함께 헌팅던에 정착하여 살다가 그들과 함께 올니(Olney)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찬송가 "Amazing Grace" 작가인 죤 뉴턴(John Newton, 1725-1807)을 만났고 그의 목회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죤 뉴턴은 윌리엄 에게 당시 " Olney Hymns" 라고 불리는 그가 편찬하고 있던 찬송가집에 찬송시를 기고하도록 초대했습니다.

 

이 때 많은 영감을 받고 있던 윌리엄은 "샘물과 같은 보혈 Cleansing Fountain)" "주 하나님 크신 능력God Moves In a Mysterious Way"를 포함한 68개의 찬송시를 써서 그 곳에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윌리엄은 죤의 지도 아래 계속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고 올니(Olney)에서의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의 형 존 쿠퍼가 사망하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몰리 언윈이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에게 우울증이 다시 찾아왔고 다시 자살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저주로 예정하셨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도록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의 고통은 16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 동안 그는 죤 뉴톤의 집에 머물면서 헌신적인 언윈 부인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다시 안정을 찾은 윌리엄은 "The Diverting History of John Gilpen"이라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그의 첫 번째 시집은 1782년에 출판되었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 시를 쓰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는 초기 낭만주의 시인들 중 최고로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윌리엄 쿠퍼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비운의 생애였다. 그러나 그의 시는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니다. 한번은 그가 너무나 극심한 절망 가운데 빠져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강가로 나갔다. 그런데 강변에 오르자 다리 위에 사람들이 수없이 서 있어서 그는 더욱 비통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자살을 기도하였다. 다락방에 올라가 석가래에 밧줄을 감고 목을 매어 그대로 뛰어 내렸으나 그만 밧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다시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서재에 들어가 벽에 걸려 있는 옛날 칼을 집어들어 가슴에 대고 앞으로 엎어졌지만 갈빗대만 조금 다치고 부러졌을 뿐이었다. 또 다시 실패를 하였던 것이다. 그날 밤 늦게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그때에 갑자기 방안에 주님의 모습과 그 사랑이 충만함을 느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외쳤다. '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여, 저를 받아 주시옵소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내 영혼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새로운 생명과 소망이 솟아남을 느꼈다. 이제 나는 새사람이 되었으니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나에게 임하였다.!" 그 날 이후로 그의 삶은 크게 변화하였다.

 

이후 그는 그를 지극히 돌보아 주던 언윈 부인이 사망하게 되자 다시 한번 어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상태로 그를 몰아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그의 마지막 시인 "Castaway"라는 또 다른 시를 그가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799년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1800년 봄, 그는 수종병에 걸려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임종은 스데반 처럼 얼굴이 밝게 빛나며 천국의 소망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 그를 본 한 사람은 그 얼굴의 평온함과 침착함이 마치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에 가득 차 있는 듯 하다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쿠퍼의 69년 삶의 여정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삶이 불쌍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가 남겨놓은 글들을 통해 바른 복음의 흔적을 뚜렷이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 (C. S. Lewis, 1898-1963) 가 쓴 책 "고통의 문제" 에서 이야기 한 "고통은 영웅을 만들어 내는 기회를 제공한다" 는 말처럼 윌리엄 쿠퍼의 고난의 삶이 그를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게 되었다고 우리는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이 쓴 찬송시 "샘물과 같은 보혈" 찬송의 중심은 사도 바울이 쓴 롬 3: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 속에서 찾게 됩니다. 하나님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의 제물로 삼으셨고 그 보혈의 피로 우리를 정결케 하셨던 것입니다.

 

생명의 피.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 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선행이나 의로운 행위만으로는 구원에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보혈의 피를 의지함으로만 가능한 것 입니다.

윌리엄 쿠퍼가 남긴 말 중 " Knowledge is proud that it knows so much ; Wisdom is humble that it knows no more 지식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고, 지혜는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겸손이다 " 라고 말하는 것이 큰 동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