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2년 독일의 살레지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어린 학생이 설교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그는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전쟁과 기근, 그리고 질병과 가난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살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 이후 구교와 신교 사이에 30년간 종교전쟁(1618-1648)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재산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런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베스트팔랜 평화조약(Peace of Westfalen)이 맺어졌지만, 신교와 구교의 대립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개신교의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30년 전쟁의 싸움터가 되었던 독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독일 지역은 인구 1600만 명 가운데 천만 명이 전쟁과 기근과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정도였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쟁 이후에도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로마천주교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돌아갔고, 천주교에서는 개신교의 교회당 건물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목회하던 교회 역시 통나무로 만든 움막에 흙벽으로 지어진 건물뿐이었고, 그 안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가톨릭교회 신부의 승낙이 없이는 환자를 방문하는 일도 할 수 없었고, 장례식조차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36개 마을에 퍼져있는 양들을 돌보는 일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마을들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성도들을 심방하다 보면 며칠씩 집을 비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704년 어느 날, 심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집이 화재로 모두 불타버리고, 자욱한 연기만 내뿜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급해진 그는 집에 남겨놓고 간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을 찾아보았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없었습니다. 두 아들은 이미 잿더미 속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불에 타 죽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접한 그는 두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로 울부짖다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를 시로 옮겨 놓은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런 극심한 절망 가운데 이 시를 지은 사람이 바로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 목사입니다. 그는 그 이후에도 혼신을 다해 교구를 돌보며 목회에 전념하였고, 60세가 채 되기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뇌졸중에서 조금 회복되었지만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목회를 계속하게 되었고, 약 천여 편의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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