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으로 대만 최대그룹 일군 故왕융칭 회장
“내 재산 사회 환원”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 화제
“돈이란 하늘이 잠시 빌려준 것 떠날땐 세상에 갚고 빈손으로…”
“모두가 재부(財富)를 바라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사람 없고, 누구도 떠날 때 가지고 떠날 수 없다. 모으는 재산은 다를지 모르지만 세상과 작별할 때는 재산도 모두 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예외가 없다.”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해 대만 최대의 그룹을 키운 왕융칭(王永慶·사진) 대만플라스틱그룹 회장이 지난달 15일 향년 91세로 숨지면서 자녀들에게 남겼던 편지가 공개됐다.
11일 홍콩 다궁(大公)보 등 중화권 언론에 따르면 편지에는 사회공헌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
“내가 노력해서 성취를 이뤘지만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사회에 공헌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다. 내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사회의 진보와 복지에 기여하려고 한다. 너희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할 것을 희망한다.”
그의 개인 재산은 약 68억 달러(8조9700억 원)로 대만에서 린위안그룹의 차이훙투(蔡宏圖) 회장(약 77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 부자다.
그는 자녀들에게 “재부는 하늘이 우리에게 잘 관리하고 쓰라고 맡긴 것이라는 본질을 알고 이런 인식하에 인생을 충실히 꾸려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나아가 “사회에 공헌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주요 뜻으로 삼되 오직 개인의 사리를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왕 회장은 세 명의 부인 사이에 10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차(茶)를 재배했던 왕 회장 집안은 가난해 왕 회장은 15세에 초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학업을 더 잇지 못했다. 그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책가방도 살 수 없고 심지어 신발도 없어 맨발로 산길을 다녔다고 한다.
그는 졸업 후 조그만 쌀가게에 취직했으나 이듬해 곧 아버지로부터 200위안을 빌려 스스로 가게를 차렸다. 그는 ‘쌀에서 돌 골라주기’와 배달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차별화된 서비스로 1년 만에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오전 2시에 일어나 1시간 명상을 하고 이어 조깅과 수건 마사지 등을 하는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을 정도로 근면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세상을 떠날 때에도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은 미국 내 공장을 시찰하려고 미국에 머물던 중이었다.
그가 세운 대만플라스틱그룹은 9개 업체에 직원 7만 명으로 자산은 1조5000억 대만달러(약 60조 원). 대만에서 유일하게 ‘세계 50대 기업’에 들어 그는 ‘경영의 신’이란 칭호까지 들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 동아일보 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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